Insight
대체 얼마여야 고객의 지갑이 열릴까?
가격을 낮추기보다, 가격에 대한 신뢰를 쌓은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다.

들어가며
고객 입장에서만 보면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건 늘 신나는 일입니다. 모처럼 쇼핑을 나설 때에 서울 근교에 위치한 대규모 아울렛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만 막상 사고 싶은 품목이 없거나, 이 제품이 이 정도의 금액이라는 생각에 실망하면서 지갑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결국 제값에 사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죠.
그렇다면 ‘제값’은 대체 얼마인 걸까요? 브랜드가 주는 가치와 제품의 실용성, 그 제품의 카테고리 평균값이 제값을 만들어내는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 중에서 원재료 값과 이를 수급하고 수송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총망라해서 최종 제품 가격이 만들어지는 것은 상당히 합당합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브랜드 가치도 가격에 반영이 되죠.
이 구조는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가를 많이 들여야 하는데, 그럼 마진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품질을 포기하고 박리다매식으로 풀어야 하는 걸까요?
브랜드 커머스 인생 2회차인 부스터스 경영진은 해답을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면 산다”는 감각
브랜든의 압축 파우치를 구매하기 전에 저는 수차례 망설였습니다. 쇼핑 플랫폼에서 옷장 정리 아이템을 검색하면 보관함, 파우치, 상자 등 수많은 잡화가 줄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품은 5천원대에도 판매가 되고 있었고, 어떤 제품은 2만원이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브랜든은 후자입니다.
브랜든의 명성은 입소문을 통해 알고 있긴 했지만 전자기기도 아니고 사진으로 볼 때 특징이 그리 없어 보이는데 이 정도 가격을 내도 되는 걸까? 싶었죠. 그래서 선택한 것은 1만2천원대 정도의 튼튼해보이는 옷 보관함이었습니다. 나름 철제 뼈대도 있고 접이식이기도 해서 기능성 제품이라는 만족감에 잘 쓰고 있었지만 이 만족감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지퍼를 닫다가 윗부분 쪽의 천이 찢어졌거든요.
결국 전 또 쇼핑에 나서야 했습니다. 큰 마음 먹고 아우터 압축 파우치부터 구매한 저는 여덟 벌의 패딩이 절반에 달하는 사이즈로 작아진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 정도 기능과 디자인이면 산다’
소비자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을 부스터스는 어떤 감각으로 알았을까요? 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명명하지 못했던 미지의 시장을 열고,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며 브랜든을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만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소모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고 지속가능한 제품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내놓을 때에도 가격에 대한 고민이 깊었을 것 같습니다.
q:"시장 가격보다 합리적이거나 납득되는 가격이 되는 구조에서, 단 우리 회사가 운영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구조는 나와야겠죠."
잘 만든 플라이휠은 규모의 경제를 탄다
제품편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가격으로 연결됩니다.

부스터스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아닌, 소품종 다량 생산을 택합니다. 제품편에서는 이걸 품질의 문제로 풀어냈습니다. — b:커머스를 하려면 좋은 제품부터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요. 그런데 가격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판매가를 낮추기 위한 구조로도 이어집니다.
q:’다량으로 팔면 돈을 많이 버니까’가 아니에요. 다량으로 팔 수 있는 구조가 나와야 규모의 경제가 나오고, 원가가 낮아져요. 그 낮아진 원가로 우리가 이익을 더 가져가겠다는 게 아니라, 프라이싱을 낮춰서 소비자와 우리가 둘 다 윈윈하는 구조로 만들려는 겁니다.
많이 판다 → 규모의 경제가 생긴다 → 원가가 낮아진다 → 낮아진 만큼 가격을 내린다 → 더 많이 팔린다 → 다시 규모의 경제가 커진다.
짐 콜린스*가 말한 플라이휠이 떠올랐습니다.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같은 힘으로도 점점 빨라지는 거대한 바퀴. b:부스터스의 가격은 이 바퀴 위에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방향이었습니다. 원가가 낮아진 만큼을 이익으로 챙기면 바퀴가 멈춥니다. 가격으로 돌려주면 바퀴가 계속 돕니다. 부스터스는 후자를 택한 것이었습니다.
c:*짐 콜린스(Jim Collins) —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작은 노력이 쌓여 거대한 추진력이 되는 '플라이휠' 개념을 제시했다.
코스트코가 좋은 예입니다. 마진을 정해둔 상한 이상으로 절대 올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죠. 더 받을 수 있는데도 받지 않는 것. 그게 손해처럼 보이지만, 수십 년 동안 코스트코를 떠나지 못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b: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건 인심이 아니라 전략이었습니다.
‘싸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
가격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숫자였습니다. 경영진이 원가율을 그냥 말해줬거든요.
q:"우리 원가를 비싸게 잡아서 판 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대규모로 해도 40%에 육박해요. 여기에 광고비와 물류비 등 고려하면 마진율만 고려한 설계가 아닌 거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같은 가격을 받는 다른 브랜드보다 제품에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진을 얇게 가져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후기가 쌓입니다.
q:"솔직히 싸지는 않지만, 다른 걸 쓸 수가 없다. 이런 후기가 진짜 많아요."


c:브랜든 고객님들의 실제 후기 – 이 값을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브랜든의 가방이 대표적입니다. 같은 기능의 제품 중에서 가장 예쁘게, 그리고 경쟁사 대비 거의 반값에 내놓습니다. 그런데도 패션 잡화가 아니라 기능을 담은 제품입니다. 캐리어를 대신할 수 있는 가방, 호텔에서 그대로 옷을 걸어 보관할 수 있는 파우치처럼요. 좋은 품질을, 납득되는 가격에. 그 조합이 "다른 걸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만들어냅니다.
부스터스는 스스로를 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격 경쟁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싸다고 말하는 순간, 더 싼 곳이 나타나면 고객이 떠납니다. 부스터스가 만든 건 가격이 아니라 가격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이 가격이면 이 품질은 이 브랜드밖에 없다"는 신뢰. 그건 더 싼 경쟁자가 나타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격은 그래서 신뢰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같은 품질을 더 비싸게 받으면 신뢰를 까먹는 것이고, 같은 가격에 더 좋은 품질을 주면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원가율을 숨기지 않고 말해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신뢰에 대한 자신감처럼 들렸습니다.
원가율이 이토록 높다면 단품을 마냥 싸게 팔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스터스는 묶음 구매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q:"여러 개를 묶어서 싸게 사시길 바라요. 우리도 한 번에 나갈 때 물류비를 줄일 수 있으니, 사실 이게 윈윈인 거예요."
이것도 인심이 아니라 설계였습니다. 단품을 하나씩 보내면 그만큼 물류비가 듭니다. 여러 개를 한 번에 보내면 그 비용이 줄어듭니다. 그 줄어든 비용만큼을 가격으로 돌려주는 겁니다. 소비자는 더 싸게 사고, 회사는 물류비를 아끼고. 앞에서 본 플라이휠과 같은 구조입니다. 누군가의 손해로 누군가가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구조를 바꿔서 양쪽이 함께 이득을 봅니다.
가격을 내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나는 마진을 깎아서 내리는 것. 이건 오래 못 갑니다. 다른 하나는 b:구조를 바꿔서 비용을 줄이고, 그 줄어든 만큼을 내리는 것. 이건 지속됩니다. 부스터스가 택한 건 늘 후자였습니다.

좋은 가격이란
좋은 가격은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가치관, 그 제품의 품질, 사야만 하는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회성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가장 저렴한 제품을 기준으로 정렬할 것이고, 급하게 구매해야 할 때에는 바로 살 수 있는 장소나 서비스에 있는 제품을 (너무 비싸지 않다면) 사겠죠.
가격(價格). 가격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합리적인 수준의 값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격이 진짜 합리적인지 모를 이 복잡한 소비 세계에서 우리는 더 싼 걸 찾아나서거나 사용해본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부스터스에서 본 가격은 원래 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q:"비싸면 품질이 좋아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가보다 낮거나 비슷한데 품질이 좋으면, 그게 진짜 좋은 제품인 거죠."
소비자에게 좋은 가격이 회사를 갉아먹는 가격이면 안 됩니다. 원가율, 물류비, 보관비를 다 감당하고도 회사가 굴러가는 가격. 그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숫자가 좋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b:가격은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였습니다. 싸게 부르는 게 아니라, 싸게 줄 수 있는 구조를 먼저 만드는 일입니다.
가격은 품질과 한 몸이고, 규모의 경제로 낮추는 것이며, 그 낮춤을 소비자와 나누는 약속이었습니다. 마진을 깎아서 싸게 부르는 게 아니라, 구조를 만들어서 싸게 줄 수 있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스터스는 "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b:대신 "이 가격에 이 품질은 여기뿐"이라는 신뢰를 쌓습니다.
마치며
가격 편으로 정의한 콘텐츠이지만 제품, 고객, 가격까지 이어지는 플라이휠이 가시화되는 것 같습니다. 커머스는 흥미로운 산업입니다. 순차적이거나 단계별로 일이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서로에 미칠 영향을 미리 고려하고 진행해야 본질적 경쟁력이 생기니까요.
제품을 만들 때에도 고객과 가격, 물류 등 후단에 진행될 모든 일들을 고려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이게 브랜드 커머스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